1960년대 중반, 세계 최대의 악기제조업체로 성장, 창립 20년 만에 악기업계와 대중음악계를 정복한, ‘펜더 (Fender)’ 하지만 창립자 ‘레오 펜더 (Leo Fender)’는 이 폭발적인 성공에 크게 지치게 됩니다.
1965년 레오 펜더 회장은 회사의 매각을 결정합니다. 매각상대는 바로 미국의 거대 미디어 기업 ‘CBS’, 당시 인수금액은 무려 1,300만 달러 였습니다. CBS가 1964년 뉴욕 양키스 구단을 인수했던 1,100만 달러보다 높은 금액이었죠.
CBS 산하의 펜더는 더욱 상승세를 거치며 1960년대 후반기, 엄청난 매출을 갱신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죠. 여러가지 위협요소들로 펜더의 미래는 점점 불투명해지기 시작합니다.
‘찍어내기식’ 생산과 수익에만 집중한 CBS의 정책으로 제품의 품질이 크게 하락했습니다. 또한 1970년대, 가성비 일본산 기타들이 미국시장에 침투하며 펜더의 자리는 점점 좁아졌는데요. 이를 틈타 라이벌 브랜드인 ‘깁슨 (Gibson)’ 역시 뒤에서 빠르게 추격해 오는 상황이었습니다.
1981년, 펜더는 새로운 경영진들을 통해 큰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부품의 퀄리티가 크게 개선되고 색다른 최신 모델도 출시되었죠. 일본의 악기공장들과 OEM체결을 통해 중저가 시장에 진출하기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펜더의 새 시도들은 철저히 외면받게 됩니다.
과거 새로운 혁신에서 출발했지만 하나의 스탠다드로 굳어진 그 이미지 때문이었을까요? 1985년, CBS는 결국 실적부진의 펜더를 매각합니다. 뜻밖에도 펜더의 임직원들이 힘을 합쳐 CBS의 지분을 매입하며 독립하게 됩니다.
다시 태어난 펜더에게 설비도 자금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건 단 하나, ‘전통적 가치’ 였는데요. 이에 겨우 마련한 새로운 공장에서, 1950-60년대 전성기 시절의 제품을 복각하며 큰 호평을 받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초고가 제품라인 ‘펜더 커스텀 샵 (Fender Custom Shop)’을 런칭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해외 OEM 생산 브랜드 ‘스콰이어 (Squier)’를 통해 중저가 시장도 휘어잡게 되죠. 이렇게 ‘왕의 귀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악기 업계의 왕좌를 되찾은 지 수십년이 지난 현재. 펜더가 아직까지도 ‘전통적 가치’에만 의존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오산인데요. 펜더는 사업다각화를 통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 중이며, ‘펜더 플레이(Fender Play)’라는 구독제 온라인 레슨 플랫폼을 런칭하여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습니다. 뮤지션들의 영원한 동반자 Fender. 미래엔 어떤 모습으로서 뮤지션들을 즐겁게 해줄까요?
2021.04.16 - [비즈니스] - 1편) 일렉트릭 기타의 명가 펜더의 시작! 전통을 깬 새로웠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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